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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전쟁이 날까?

한반도에 전쟁이 날까?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452845.html 한겨레 신문의 기사입니다. 아마도 이 분석이 정확하지않을까 합니다. 월스트리트 저널 원문을 직접 보지 못해 정확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연평도 포격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FTA가 통과되던 당시 이에대한 기사는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연평도 포격 사건과 위키리크스 기사만 뜬금없이 잔득 미디어에 가득 했던 것은 다 이유가 있겠지요. 이 정권의 초기부터 아들 부시가 하던 공포정책을 따라하는 쥐를 보면서, 북조선인민공화국을 계속 자극하며 공포를 만들어 낸 뒤, 그로부터 충분한 기득권의 이득을 얻어내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대포폰, 민간인 사찰, 4대강, 무료급식의 이슈가 한창일 때 천안함으로 무마하려는 것도 그렇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때 때 맞추어 날려주신 김정일 수령동지의 대동포도 그렇고.... 이것들이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벌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천안함으로 미군은 오키나와 기지를 얻었고, 쥐는 온갖 비리와 정권의 이득을 시민의 동의 없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은 무엇을 얻었을까요? 김정은의 승계를 인정받지 않았을까요? 한반도에 전쟁이 날까요? 아마 중국과 미국의 싸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행이도 대한민국은 자주권이 없습니다. 시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자주권 조차도 없는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원하지도 않는 우파정책(이라크 파병)까지 하며 반환 받으려 했던 작전권은 가증스런 쥐 한마리가 FTA 이권과 함께 형님 나라에 고이 돌려 드렸지요.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는 북조선 인민공화국, 중국, 미국인 셈이죠. 일본은 자위대의 권한도 충분치 않고, 전쟁을 일으킬 명분도 충분치 않으니 떨어지는 떡고물을 기다려야 할 때인게죠. 지정학적 역학관계로 볼 때 중국은 북조선 인민공화국...

ㅠ.ㅠ

안녕히 가십시오, 리영희 선생님. 선생님이 떠나가심을 민중이 슬퍼하지 않는다면, 제 마음은 바닥에 꼬꾸라져버릴지도 모릅니다. 다행이 선생님께서는 변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 변하지 않는 마음을 남겨두고 가셨습니다. 광주 이후 무엇이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민중은 이 나라에게 민주라는 옷을 입히고 10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변한 것은 없습니다. 변한 것이 있다면 이 나라에 민주의 옷을 입히기 위해 제가 투표했던 대통령들만이 선생님보다 먼저 떠나가셨을 뿐입니다. 민중은 경제를 위해 민주를 땅에 묻고 제사만 지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경제가 돈으로 돌아가는 줄 아나 봅니다. 사람들은 Credit이 은행에서 나오는 줄 아나 봅니다. 사람들은 신뢰가 Business의 기본인지 모르나 봅니다. 정신과 현실을 날카로운 칼로 베어내어 돈만 벌어들일 수 있을 줄 아나 봅니다. 청이 허락한 “조선”이란 이름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청의 자리를 미군정이 차지하였을 뿐입니다. 북조선인민공화국은 그저 청이 허락한 이름을 자신들의 정통성을 위해 이용해먹고 있을 뿐입니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통성 역시 민중이 없으면 허울일 뿐입니다. 민중을 위한 역사는 민주화로부터 시작됨을 선생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민주화는 진실로부터 출발한다는 것도 항상 역설하셨습니다. 그 정신을 바탕으로 부마 항쟁,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광주를 민주화 운동의 본격적 시발점으로 본다면,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4반세기가 채 되지도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 뿌려놓으신 민주화의 씨앗은 이제야 떡잎을 척박한 토양 밖으로 밀어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의 정권의 의식이 30년 전으로 돌아가버리긴 했지만, 앞으로 선생님께서 뿌려 놓으신 씨앗을 키우기 위해 우리가 할 일들이 많습니다. 선생님의 정신 잊지 않겠습니다.

보광동 달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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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e Bourgeois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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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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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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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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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란 이름의 아름다움! 남산길을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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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을 주는 사람, 영향을 받는 사람

INFLUENCERS FULL VERSION from R+I creative on Vimeo .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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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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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신사동과 반포동을 가르는 강남대로. 미친 네온사인이 취객을 유혹하는 보도블록 한 구석에 아이 한 명이 앉아있다. 바닥에 깐 깔개는 11월 초 차갑게 식은 벽돌의 냉기를 막아주기에는 너무 얇다. 아이는 엄마에게 무엇인가를 받아 먹고 있다. 눈이 아프도록 유치한 채도 높은 네온 불빛은 아이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도록 온갖 색깔로 그것을 물들인다. 잘 알아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강남의 아이들이 먹는 유기농 과자는 아니다. 볼록한 이마 아래로 보이는 그것이 아이의 식욕을 달구었는지, 아이가 들고 있는 그 과자는 침으로, 반사된 네온 빛으로 번들거린다. 아이의 엄마는 옆에서 싸구려 펠트 천 위에 열쇠고리를 펼쳐놓았다. 깔아 놓은 천을 돌돌 말아 끈으로 묶으면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딱 그만큼의 물건들이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놓여있다. 한 덩어리의 싸구려 물건들, 물건들은 그것들이 가진 속성 별로, 외적 형태의 단순한 차이로 구분한 분류 별로 구분 되고 줄 지어져 아무리 잘 정리되어 있어도, 그녀가 깔아놓은 것들은 누가 보아도 싸구려다. 그래, 정말 미안하지만, 누가 보아도 싸구려다. 그녀가 진정한 보따리장사였다면 물건을 그런 안목을 가지고 떼어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진정한 보따리장사’? 보따리장사 비웃으시나? 그들은 일명 '나까마'라 불린다. 보따리에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커버린 대형 유통업자들도 있다. 덩치 꽤나 있는 나까마들은 세계를 누빈다. 법인 사업자만 아닐 뿐이지 그들은 정말 무역업자들이다. 그녀는 열쇠고리를 팔러 나온 것이 아니다. "생존"이란 단어가 그녀를 아이와 함께 신사동 유흥가로 내 몰았을 뿐이다. 그녀는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눈길을 던지지 못한다. 그녀는 "장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다. 물건을 판다는 것, 어쩌면 심리학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물건을 사는 줄 알지만, 사실 물건 위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의미들을 산다. 권력, 섹스, Class.... 현대의 상품이란 그런...

음성에서 본 파브르 윤씨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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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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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권 "일상생활의 역사"편에 보면 도시와 시골의 관계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시골은 도시와의 협력(?)관계 내지는 교류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습니다. 시골에서 생산하는 재화가 시골 자체내에서 모두 소비되기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도시의 거대한 소비가 시골의 재화 생산을 소비해주지 못하면 시골에서의 생산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도시는 시골의 재화생산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자신의 행정능력과 지배력을 바탕으로 시골을 종속시킵니다. 시골은 도시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주종관계는 도시에 몰려있는 귀족세력 및 부르주아지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힘 없는 평민, 농노계층은 폭압적 지배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도시와 시골의 주종관계는 비단 봉건 시대, 초기 산업사회의 현상은 아닙니다. 현대사회 역시 도시와 시골은 이러한 주종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대한민국의 봉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시골은 도시를 떠받치기 위한 "종"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친일파 봉건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봉건 지주세력의 독점 자본주의를 발달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배의 명분이 없는 친일 봉건세력은 자본이 평민들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순간 자신의 지배력에 대한 도전이 일어날 것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지배세력의 우려 속에서 그들만의 독점 자본주의를 발달 시켰고, 그들 지배세력과 결탁한 특정 재벌을 중심으로 자본의 힘을 키워 나갔습니다. 삼성, 현대, LG(럭키 금성), SK(선경)이란 거대 자본은 친일 봉건세력과의 결탁을 통해 토착 봉건세력에서 국가의 자본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자본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암울한 역사는 시골이란 환경을 이렇게 바꾸어 놓습니다. 일요일 정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