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권 "일상생활의 역사"편에 보면 도시와 시골의 관계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시골은 도시와의 협력(?)관계 내지는 교류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있습니다. 시골에서 생산하는 재화가 시골 자체내에서 모두 소비되기위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 도시의 거대한 소비가 시골의 재화 생산을 소비해주지 못하면 시골에서의 생산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도시는 시골의 재화생산에 의존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자신의 행정능력과 지배력을 바탕으로 시골을 종속시킵니다. 시골은 도시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이러한 주종관계는 도시에 몰려있는 귀족세력 및 부르주아지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힘 없는 평민, 농노계층은 폭압적 지배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도시와 시골의 주종관계는 비단 봉건 시대, 초기 산업사회의 현상은 아닙니다.
현대사회 역시 도시와 시골은 이러한 주종관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대한민국의 봉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시골은 도시를 떠받치기 위한 "종"관계에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친일파 봉건세력들이 권력을 잡고,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봉건 지주세력의 독점 자본주의를 발달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배의 명분이 없는 친일 봉건세력은 자본이 평민들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순간 자신의 지배력에 대한 도전이 일어날 것이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지배세력의 우려 속에서 그들만의 독점 자본주의를 발달 시켰고, 그들 지배세력과 결탁한 특정 재벌을 중심으로 자본의 힘을 키워 나갔습니다.
삼성, 현대, LG(럭키 금성), SK(선경)이란 거대 자본은 친일 봉건세력과의 결탁을 통해 토착 봉건세력에서 국가의 자본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자본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암울한 역사는 시골이란 환경을 이렇게 바꾸어 놓습니다. 일요일 정오, 가족들이 밖으로 산책을 나와야 할 공원에 사람은 얼마 없습니다. 북적거려야 할 중앙로에 차는 없습니다.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배출했다는 자긍심으로 만들어진 반기문로에는 중앙 행정세력이 "옛다" 하며 던져준 쓸모없는 허영만이 굴러다닐 뿐입니다.
음성이란 지역 역시 도시를 형성하고 있고, 브로델의 논리대로라면 주변 농지를 자신들의 세력권으로 지배하여야 했을텐데 왜 이런 유령 도시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서울"이라는 중앙 집권적 독점세력에게 자신의 지배력을 빼앗긴 탓이겠죠. 지배력 뿐 아니라 경제활동 역시 서울에 종속되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분명 이곳에는 상점들이 있고, 시장이 있고, 유흥업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는 못합니다. 아마도 지리적 영향도 있을겁니다. 서울은 음성에서 한 시간 이십 분 거리에 있습니다.
사실상 이 정도의 시간적 거리에 위치하게 되면, 서울과의 경제 교류가 지역내 경제교류보다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에 서울과 직접 교류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지역 자체 교류는 점점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시간적 지리가 가까운 탓으로 돌리기에는 지역 사회가 너무도 죽어 있습니다.
지역 내의 시장경제가 이렇게 죽어버린 데에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가 소비하는 재화의 양도 문제겠지만,
이 지역 내의 토착세력이 서울의 행정권 내로 흡수 된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겁니다.
이 지역의 세력이 더 거대한 서울의 세력과 결탁하기를 욕망하며 자신의 산업을 서울에 내어 준 것일수도 있고,
이 지역의 지배세력 자체가 서울의 세력으로부터 내려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 내막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반기문로에 굴러다니는 지역 사회의 씁쓸한 허영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제가 바라보는 충북 음성은 이런 모습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