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보낸 편지 |
종교에 관한 조그마한 생각을 친구에게 메일로 보냈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기에 종교에 관해 뭐라고 이야기 할 만한 입장은 아닙니다. 종교인이라고해서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처럼 지하철을 소란스럽게 한다거나, 유사종교의 형태를 띤 광신도들의 집단처럼 한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행동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적 세계 안에서 자신과 가족과 친구들의 안녕을 빌고, 종교적 사고와 신념, 그를 통한 삶의 방식을 실천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러한 종교적 실천을 하고,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그 사람들은 또 하나의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공동체는 다시 독립적으로 인지되는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종교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 - 내 생각에는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 특정 사회 안에서 만들어내는 부수적 효과들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속한 가정은 천주교 가정입니다만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천주교교회(성당)에 나가기를 바라시고, 저는 그런 종교적 실천이 저의 실질적 삶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성당에 나가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약간의 갈등을 만들어 내고,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목적으로 저는 종종 믿지도 않는 종교의 의식행위에 참석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중으로 사람을 속이는 행위인데, 첫째로는 저는 천주교 사회의 구성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그 집단에 속한 사람으로 인지시키는 행위이고, 둘째로는 어머님께 이루어지지 않을 기대감 - 제가 천주교 신자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제가 신앙이 깊지 않다고 제게 실망하시고, 저는 저대로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종교의 문제이거나, 근대 사회의 태동기때 벌어진 Secularism의 확산이라는 거시적 관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이 하나의 사회 속에서 동질감을 확득하려는 본성이 이질적 사회와 접촉하면, 이질적 사회를 자신의 사회에 융화시키려고 하는 본능적 작용이 불러일으키는, 개인적 차원의 미시적 문제로 해석됩니다. 두 이질적 집단이 각각이 가진 특성 속에 상대방을 융화시키려 한다면 분명 마찰이 일어나겠지요. 그것이 천주교와 Secularist의 갈등이건, 민주주의자와 자본주의자의 갈등이건, Muslim과 Catholicism의 대립이건 마찬가지일거란 생각을 합니다. 어찌되었건, 제가 친구에게 그 친구의 종교에 관해 약간의 저속한 표현을 하였고, 그것에 대해 충분히 사과 했다고 느끼는데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여전히 기분이 나쁜 듯 합니다. 그 친구에게 한 번 더 하고 싶은 말은 종교를 저속히 표현한 것에 대한 사과보다는 그 친구의 종교적 실천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고있고, 저의 표현이 그 친구의 그러한 마음에 불편함을 주었으니, 바로 그 불편함을 준 행위에 대해 사과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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