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09의 게시물 표시
친구에게 보낸 편지 종교에 관한 조그마한 생각을 친구에게 메일로 보냈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기에 종교에 관해 뭐라고 이야기 할 만한 입장은 아닙니다. 종교인이라고해서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처럼 지하철을 소란스럽게 한다거나, 유사종교의 형태를 띤 광신도들의 집단처럼 한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행동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인들은 자신의 종교적 세계 안에서 자신과 가족과 친구들의 안녕을 빌고, 종교적 사고와 신념, 그를 통한 삶의 방식을 실천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러한 종교적 실천을 하고,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 그 사람들은 또 하나의 문화적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 공동체는 다시 독립적으로 인지되는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종교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 - 내 생각에는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 특정 사회 안에서 만들어내는 부수적 효과들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속한 가정은 천주교 가정입니다만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천주교교회(성당)에 나가기를 바라시고, 저는 그런 종교적 실천이 저의 실질적 삶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성당에 나가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는 어머니와 나 사이에 약간의 갈등을 만들어 내고,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목적으로 저는 종종 믿지도 않는 종교의 의식행위에 참석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중으로 사람을 속이는 행위인데, 첫째로는 저는 천주교 사회의 구성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그 집단에 속한 사람으로 인지시키는 행위이고, 둘째로는 어머님께 이루어지지 않을 기대감 - 제가 천주교 신자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제가 신앙이 깊지 않다고 제게 실망하시고, 저는 저대로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종교의 문제이거나, 근대 사회의 태동기때 벌어진 Secularism의 확산이...

내원사

이미지

우울한 해운대

이미지
아이는 모래놀이 세트보다 바다가 더 관심있다. 도시는 재미를 주고, 자연은 감동을 주니까. 사람의 손때가 묻어있는 것들이 좋다. 때묻은 사물들, 때묻은 벽, 그리고 때묻은 삶. 해운대 뒤 이런 골목길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행복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행복한 해변 뒤에 이런 골목과 삶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간교한 정부의 프로파간다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도 모른다. 그냥 진실을 모르는 것일 뿐. 달맞이 고개 아래 자리잡은 조그만 항구.

청사포

이미지

홍룡사

이미지
개천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다리 옆으로 시원한 대나무 숲이 있다. 원한 많은 영혼이 쉬어가듯 바람이 불어도 대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연꽃이 왜 불교를 상징하는지 역사적 지식은 없다. 그래도 연꽃을 보면 불교의 향 냄새가 풍겨나는 것만 같다. 주지 스님 애지중지 하시는 목탁만 같다. 놓여있는 모습이 무릅꿇고 불공드리는 동자승같아 기분 좋다. 부처님 위로 잔뜩 붙어있는 Post. Post it이 나오기도 한참 전에 사람들은 이렇게 소원을 천정에 붙여놓는 법을 알아냈다. 부처님께서 이 소원 다 들어주려면 똥줄좀 타실 것 같다는 생각이.... 절간마다 이런 소원이 잔뜩 붙어있다. 숲과 건축과 단청이 녹아 화려한 자태에 어울리지 않게 겹손한 멋을 부린다. 멋은 부리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는 것이라 했던가? 이 황홀한 단청은 도시로 내려가면 그 빛을 바래고 초라해진다. 존재들이란 다 그들만의 자리가 있다. 단청도 산도 사람도. 난 불교신도가 아니지만 단정하게 놓인 방석을 보고 부처님께 절 한번 올렸다. 너무 겸손한 방석, 너무 겸손한 촛불, 그리고 그 겸손한 부처님의 AURA..

홍룡사

이미지
지하대장군, 웃는 것일까 찡그린 것일까? 함축적인 표정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달라진다. 기분이 좋았던 것인지 나에겐 웃는 모습으로 보인다. 홍룡사 앞 소나무 아래 누군가가 사진을 바쳤다.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손녀인지, 아니면 손녀를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인지... 누군가가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 것이 사람을 눈물나게 한다. 나 역시 그렇게 누군가를 남겨놓아야 할 때가 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인지.. 외로운 것인지. 이름답게 용 한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