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다시 한 번 달동네에 갔습니다. 이곳 부산에서의 일은 앞으로 3개월 안으로 계약 만기이기 때문에 그 전에 부산의 달동네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달동네란 곳은 많은 느낌을 줍니다. 역설적이지만 달동네란 곳은 화려한 도시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공간입니다. 도시는 많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면서도 모든 노동자들을 위한 토지와 재화는 제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달동네라는 특수한 환경을 만들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본주의 구조는 재화 총량은 충분하다고 보여지지만 그 재화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기초적인 삶의 질을 위해 충분히 배분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에 '제한되어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시골의 마을은 생활 수준이 아무리 낮아도 달동네만큼 열악한 환경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대지가 넓은 시골은 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충분한 사적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인간도 삶의 영역을 사적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동물 중 하나라고 느껴집니다. 충분한 사적 공간만으로도 삶의 질은 상당히 높아집니다.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온 것은 기껏해야 34만년 정도 되었고(아프리카 원인이자 인간의 원초적 조상격인 루씨가 그 시대에 갈라져 나온것으로 인류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인간과 가까운 침팬치의 경우 각 씨족무리는 무리만의 충분한 공간을 점유합니다. 동물들에 따라서는 충분한 공간이 없을 경우 살아갈 수 조차 없습니다.
달동네는 비싼 도시의 대지 위에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기에 단위 면적당 인구수가 많을 수 밖에 없고, 이러한 특수한 환경속에서 사람들이 사적공간을 충분히 가지기에는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적 공간의 부재가 사람들을 좀 더 친밀하게 만들 수 밖에 없는 좋은 점(?)도 있기는 하지만, 이런 효과는 -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 환경에 의해 강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보여집니다. 강한 친밀감이 서로에 대한 관용도를 높여주고, 또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지요. 이곳 사람들이 좀 더 넓은 사적 공간에 대한 열망이 없다고 말 할수는 없겠지요.
달동네의 열악한 환경은 사적 공간의 부재만이 아닙니다. 생활하는데 필요한 물자의 낮은 질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로 보여질 정도로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도시의 부촌이 그들 삶에 가하는 위협입니다. (제가 오늘 간 달동네의 이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남부민(南副民)동입니다. 남쪽의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니...) 이곳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강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도시의 화려함과 부가 가난한 그들간의 자존심을 넘어서 서로의 삶을 위로해야 할만큼 위협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끼리도 자존심은 세운다고 느껴집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부자들로부터 느껴지는 자존심의 상처를 공감한다기 보다는 도시의 부가 가난하고 삶이 위태로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고, 그런 위협으로부터 그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서로의 자존심을 넘어 연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달동네의 재개발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들은 재개발 된 그들의 동네에 안착할 수 없습니다. 국가나 건설사의 보상금은 그들이 재개발 된 그곳에 다시 안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기 마련입니다. 보상은 재개발 전의 공지시가로 이루어지고, 재개발이 되고나면 그곳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재개발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나면 이미 부를 소유한 사람들이 달동네로 들어오기 마련이죠. 부자들은 싼 값에 그 곳에 땅과 집을 미리 사고 전입신고만 한 뒤 세를 주고 부자들의 생활권에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 그 자체가 달동네 사람들에게는 위협인 것이지요.
달동네의 사진을 찍던 중 그곳 사람중 한 명을 만났습니다. 대뜸 제게 "여기서 이렇게 사진 찍으면 안되요, 제가 찍혔나요?" 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그 분이 찍히긴 했지만 저는 안나왔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음이 많이 안좋았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 때문이 아니라 제가 그분에게 상처를 준 적 같아서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그곳 사람이 아닌 사람을 보면 아주 많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 분의 눈빛은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받은 듯 했습니다. 그분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리고 싶습니다. 그 후 저는 그곳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아니 찍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들고있는 카메라조차도 그들에겐 위협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그나마 재개발이 조금 이루어진 듯 깨끗해 보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